스타트업 관람가 63. ‘타이타닉’의 호화유람선과 ‘라이프 오브 파이’의 구명보트
September 1, 2017

폼나게 일하고 볼품없이 침몰하기

스타트업들은 모두들 좋은 근무환경과 복지제도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. 저도 그렇습니다. 근무환경과 사내복지가 하나씩 개선되어 갈 때마다 뿌듯함을 느낍니다. 다른 스타트업들의 놀라운 복지환경을 보면 때론 부럽기도, 우린 아직 그럴 수 없어서 미안하기도 합니다.

그런 로망 때문일까요. 좋은 근무환경과 복지제도가 마치 모든 스타트업이 당장 갖추지 않으면 안 될 필수 항목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. 좋은 성과를 내는 비법으로 회자되기도 합니다.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. 수평적이고 유연한 문화는 확실히 창의적인 사고를 돕고 업무효율을 높여주죠.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 할 좋은 근무환경과 복지제도를 갖추는 것이 성공의 비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. 적어도 초기 스타트업에게는요. 그건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합니다.

생존 문제를 제쳐두고 폼부터 나야 했던 <타이타닉>(Titanic, 1997)

<타이타닉>은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죠. 타이타닉호가 막 건조됐을 때 붙은 별명은 불침선(Unsinkable)이었습니다. 당시의 기술력이 집약된 이 거대하고 호화로운 배가 침몰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.

타이타닉호는 호화로움 그 자체였습니다. 총 11층인 이 배엔 수영장, 터키탕, 도서관, 우편저장소, 혹은 1등실 승객들을 위한 개인 산책로나 야자수 코트도 있었습니다. 사람들은 이 배의 견고함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습니다. 심지어 배의 침몰이 시작될 때조차 그랬습니다. 빙산과의 충돌로 배가 흔들리자 깨어난 승객들은 갑판 위에 쏟아진 얼음덩어리로 축구를 하거나 잔에 넣어 위스키를 마시며 이 참사의 시작을 축제처럼 즐겼습니다.

선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.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대참사로 남은 가장 큰 이유는 구명보트 부족 때문이었습니다. 그렇게 넓은 배였음에도 총 승객 2,200여 명 중 1,17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보트만 싣고 있었습니다. 전방에 빙산이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선장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고, 빙산과 충돌한 사실을 인지했을 때조차 계속 전진했습니다. 모두가 방심했던 것이죠. 모두 그 호화로움에 홀려있었습니다.

생존 계획을 세우고 착실히 수행한 <라이프 오브 파이>(Life of Pi, 2012)

<라이프 오브 파이>에서 주인공 파이가 탄 배는 아주 작습니다. 잘 쳐줘야 겨우 몇 평 정도 될만한 구명보트입니다. 식량도 얼마 없습니다. 내리쬐는 햇볕과 비바람을 막아줄 차양도 없습니다. 설상가상 이 배엔 사나운 뱅갈 호랑이 한 마리가 함께 타고 있습니다.

파이는 이 구명보트에서 227일을 버텨냅니다. 굶어 죽지도, 호랑이에게 먹히지도 않고 살아서 집에 돌아옵니다. 오로지 생존 하나만을 목표로 주어진 자원을 귀중히 활용했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. 파이의 생존 이야기는 영상미를 강조한 영화보다 원작*에서 더 자세히 그려집니다. (얀 마텔의 소설 '파이 이야기')

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파이는 보트 바닥에서 생존물자를 발견합니다. 물과 비스킷이었습니다. 파이는 이 한 줌의 식량을 아끼고 아껴 최대한 오래 먹을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웁니다.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도 그 계획을 지킵니다. 비스킷 4분의 1조각, 물 한 모금으로 하루를 버팁니다. 초반의 이 악착같은 자원 절약은 훗날 파이가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.

그럼에도 식량은 바닥납니다. 그때부터 파이는 낚시를 하며 생존을 위한 식량을 직접 확보합니다. 처음으로 바다거북을 낚았을 때 파이는 오히려 절망을 느낍니다.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이제껏 육식 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. 하지만 심각한 탈수 현상으로 고통받고 있었기에 바다거북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죽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. 파이는 생존을 택합니다. 피를 마시고 살을 먹습니다. 건져 올리는 생선과 바다거북의 절반은 매번 뱅갈 호랑이 찰리 파커에게 주었습니다. 그러자 이 영악한 호랑이는 파이가 자신의 생명줄임을 파악하고 물어 죽이지 않았습니다.

초기 스타트업이 있는 가장 멋있는 일은 자생적인 생존구조를 만드는 것이다

호화유람선 타이타닉의 침몰과 작은 보트 위 파이의 생존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. 스타트업도 사실 그럴 능력이 안 되는데 폼나는 일만 쫓으면 침몰할 수 있습니다. 사이즈가 크다고 반드시 강한 것도, 생존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. 망망대해를 항해 중인 모두에겐 방심하는 순간 침몰의 위험이 옵니다.

처음부터 폼나고 싶은 건 욕심인 것 같습니다. 맨손으로 생존해야 하니 폼이 안 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. 유명한 스타트업이 하는 그런 복지환경을 곧바로 갖출 수는 없습니다. 좋은 근무여건과 복지문화는 승리의 전리품이기 때문입니다. 작은 승리 후엔 작은 개선을, 큰 승리 후엔 큰 개선을 할 수 있습니다. 일단은 승리부터 해야 합니다.

반대로 허리띠를 계속 졸라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. 어느 기간 동안에야 그렇게 할 수 있지만, 평생 갈 순 없습니다. 작은 승리들이 이뤄질 때마다 자연스레 여건도 조금씩 좋아지는 그림이 우아합니다. 어느 정도 성공이 축적되면 이제 조금씩은 폼도 좀 나야 하지 않을까요.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돌려주고, 무리한 야근은 줄여가고, 근무환경과 복지도 개선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. 그러면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을 수 있고 계속 좋은 인재를 영입할 수 있습니다. 결국은 효율 좋은 투자입니다.

<라이프 오브 파이>의 마지막 대사는 이랬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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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이미지 ⓒ 20 Century Fox.

slogup
김상천 coo@slogup.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.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'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'의 저자입니다. 홈·오피스 설치/관리 플랫폼 '쓱싹'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.